
“우리는 역사를 배우기만 했지,
아픔을 치유하는 법은 배우지 못했다.”
동학과 개벽파부터 김지하와 태극까지
우리가 놓친 한국사의 숨겨진 목소리
SPNS TV 화제의 콘텐츠 ʻ역사테라피’ 전격 단행본화!
★★★ “내가 살면서 본 그 어떤 팟캐스트보다 유익하고 즐겁다!”
★★★ “너무 재밌다… 이거만 기다렸다면 믿어줄래…?”
★★★ “젠장… 나는 역시 한국사 네가 좋다.”

“함석헌 선생의 『뜻으로 본 한국역사』를 잇는
한 세대의 좌표이자 시대의 이정표가 될 책!”
_이병한(광주과학기술원 특임교수,『유라시아 견문』저자)
책 소개
“역사는 우리의 삶을 치유할 수 있을까?”
민사고, 다트머스, 옥스퍼드… 정답만 외우던 전교 1등이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아 스스로 물은 한국사의 14가지 질문들
민사고, 다트머스대학을 나와 옥스퍼드대학 대학원에서 역사학을 공부한 역사학도이자, 현재는 밴드 ʻ양반들’의 보컬로 활동하는 작가 전범선이 자신의 첫 대중 역사서를 출간했다. SPNS TV와 공동 기획한 이 책은 그가 역사학도로서 오랫동안 품어온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의 고민을, 한국사의 거대한 트라우마와 포개어 치유의 관점으로 서술한 첫 대중 역사서다.

최제우의 개벽사상과 서재필의 독립정신으로 문을 여는 이 책은, 친일파로 알려진 이완용이 정작 죽을 때까지 단 한 글자도 일본어를 배우지 않았던 아이러니부터 함석헌·류영모가 주창한 국가주의를 넘어선 평화주의 우파의 계보 등 우리가 그간 단면적이고 편향적으로만 알던 한국사의 숨겨진 이야기들을 조명한다.
특히 서구적 ʻ개화’의 프레임에 갇혀 잊혔던 동학의 ʻ개벽’ 정신과 호머 헐버트가 발견한 한국 문화의 위대함을 시인 김지하가 제시한 태극의 정신로 엮어내며, 온갖 역사 왜곡과 편가르기 식의 이념의 감옥에 갇힌 독자들에게 해방의 열쇠를 건넨다. “역사는 우리 삶을 치유할 수 있는가?” 저자가 던지는 이 질문을 따라가다 보면, 상처와 굴절로 점철된 한국사의 염증이 걷히고 비로소 우리가 회복해야 할 한국사의 진짜 흥과 신명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과거를 용서할 수 있을까?”
① ʻ오늘의 한국’이 왜 이렇게 되었는지를 알고 싶은 당신을 위한 한국사
TV만 켜면 뉴라이트 논란, 극우와 좌파 사관의 충돌, 국경일 기념 방식을 둘러싼 소모적인 논쟁이 쏟아진다. 하나의 나라에서 하나의 역사를 공유하면서도 왜 우리는 매일 남처럼 싸워야 할까? 민족사관고등학교를 거쳐 영국 옥스퍼드대학에서 역사학을 전공한 저자 전범선은 이 긴 갈등의 기원을 추적하기 위해 한국 근현대사라는 거대한 트라우마의 숲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숲에서 전범선은 자신에게,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 한국사는 어째서 평화가 아닌 갈등과 증오의 언어로만 기록되어 있는 것인지, 왜 우리는 과거의 유령들에게 붙잡혀 여전히 선과 악을 나누고 내 편과 네 편을 가르며 살아야 하는 것인지 질문을 던진다.
ʻ내가 태어난 이 나라는 왜 갈라져야만 했을까?’, ʻ왜 나는 철조망에 갇힌 이 반도에서 태어나 청춘의 시간을 바쳐야 했을까?’, ʻ고라니와 두루미조차 자유롭게 넘나드는 저 선을, 왜 인간인 나만은 넘지 못하는 걸까?’ 제게 이 질문들은 단순한 지적 호기심이 아니었습니다. 정체성의 혼란이라는 감옥에서 벗어나기 위해 반드시 풀어내야만 했던, 가장 개인적이고도 절박한 생존의 암호였죠. 이 질문들에 천착할수록 주어는 자연스레 ʻ나’에서 ʻ우리’로 확장되었습니다. ʻ우리는 어쩌다 이토록 깊은 트라우마를 유산으로 물려받게 되었을까?’, ʻ우리는 왜 과거의 유령들에게 붙잡혀 오늘을 희생하며 살아야 하는 걸까?’, ʻ한국사는 어째서 평화가 아닌 갈등과 증오의 언어로 기록되어 있을까?’ _본문에서
책은 우리가 그간 당연시해온 역사적 도식에 균열을 내는 흥미로운 질문들로 화두를 연다. 일례로 우리는 흔히 우파를 강력한 국가주의와 결부시키지만, 저자는 한국 우파의 숨겨진 뿌리로 오산학교의 남강 이승훈과 다석 류영모와 씨알 함석헌을 소개한다. 이들은 국가라는 존재가 지배자의 이익을 위해 전쟁과 착취를 일삼는 만악의 근원이 될 수 있다고 보았으며, 국가 권력을 넘어선 ʻ씨알(민중)’의 주체적 연대와 정신적 자강을 강조한 사상가들이었다. 이들이 남긴 비폭력 평화주의 사상은 국가의 권위를 강조하고 타자를 배척하며 점점 고립되어가는 오늘날 목격되는 일부 우파의 모습들과는 궤를 달리하는, 한국사가 잃어버린 소중한 보수주의의 목소리들이다.
또한 불세출의 독립운동가 안중근이 한때 일본의 러일전쟁 승리를 ʻ동양의 희망’이라고 진심으로 기뻐하며 한국과 일본은 동양의 벗이 될 수 있다고 믿은 반면, 오로지 개인의 영달을 위해 나라를 들어 일제에 팔아넘긴 이완용은 정작 평생 일본어를 배우지 않으며 일본인을 대할 때조차 영어로 소통했다는 사실은 우리가 알던 선악의 이분법을 무너뜨린다. 이처럼 이념의 껍데기 아래 숨겨진 그들의 이야기를 편견 없이 마주할 수 있을 때 여기저기 멍들고 갈라진 한국사의 상처들을 치유하는 진정한 테라피가 시작될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죄책감도 분노도 애국심도 강요하지 않는 역사를 만나고 싶다!”
② 2D 교과서 너머에 있는, 21세기 독자를 위한 3D 한국사
이러한 입체적인 시각은 저자 전범선의 독특한 이력에서 기원한다. 1991년 강원도 춘천에서 태어나 민족사관고등학교를 졸업한 그는 미국 다트머스대학에서 역사를 전공하고 영국 옥스퍼드대학 대학원에서 역사학 석사학위를 받으며 동서양의 사상적 경계를 넘나드는 학문적 토대를 쌓았다. 미군복을 입은 한국군 카투사를 전역한 뒤 현재는 낮에는 서점을 운영하며 글을 쓰고 밤에는 밴드 ʻ양반들’의 보컬로 활동하며 하나로 규정되지 않는 삶을 이어가고 있다. 그리고 이런 유교적 엄숙함과 로큰롤의 야성이 충돌하는 ʻ경계인’으로서의 삶은 저자로 하여금 역사를 고정된 텍스트가 아닌, 인간의 날것 그대로의 경험이 녹아 있는 이야기로 받아들이게 만들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1886년 선교사로 조선에 와 고종과 각별한 우정을 쌓고 최초의 한글 교재까지 만든 호머 헐버트라는 인물의 삶이다.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사랑했던 미국인 헐버트는 우리가 하찮게 여기던 한글의 위대함을 단번에 알아보고 가로쓰기와 띄어쓰기를 최초로 도입하며 ʻ한국학’의 기틀을 닦았다. 독립운동가 안중근은 헐버트를 향해 ʻ조선인이라면 하루도 잊어서는 안 되는 사람’이라고 칭송했다. 그럼에도 호머 헐버트라는 이름은 한국인들에게 낯선 이름이다. 우리조차 몰랐던 우리의 가치를 발견해주어 사대주의적 열등감이라는 트라우마를 치유해준 사람을 우리는 아직까지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이 책에는 갑신정변 실패 후 가족을 모두 잃고 자신을 죽이려 했던 조국을 위해 오히려 미국에서 번 전 재산을 털어 독립운동 자금을 대고 신문을 만들었던 ʻ필립 제이슨’ 서재필, 청계천에서 단발 투쟁을 하며 구습에 저항한 최초의 페미니스트 허정숙과 그녀의 동지들, 일제의 모진 고문 속에서 미친 연기를 하며 자기 똥을 먹으면서까지 독립과 혁명의 신념을 지키려 했던 박헌영 등 학교에서 제대로 배우지 못한, 하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한국사를 움직이고 다채로운 빛깔로 시대를 물들인 인물들의 숨결들이 빼곡히 담겨 있다.
“우리는 우리의 과거를 용서할 수 있을까?”
③ ʻ오늘의 한국’이 왜 이렇게 되었는지를 알고 싶은 당신을 위한 한국사
TV만 켜면 뉴라이트 논란, 극우와 좌파 사관의 충돌, 국경일 기념 방식을 둘러싼 소모적인 논쟁이 쏟아진다. 하나의 나라에서 하나의 역사를 공유하면서도 왜 우리는 매일 남처럼 싸워야 할까? 민족사관고등학교를 거쳐 영국 옥스퍼드대학에서 역사학을 전공한 저자 전범선은 이 긴 갈등의 기원을 추적하기 위해 한국 근현대사라는 거대한 트라우마의 숲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숲에서 전범선은 자신에게,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 한국사는 어째서 평화가 아닌 갈등과 증오의 언어로만 기록되어 있는 것인지, 왜 우리는 과거의 유령들에게 붙잡혀 여전히 선과 악을 나누고 내 편과 네 편을 가르며 살아야 하는 것인지 질문을 던진다.
한국은 지난 수천 년간 유교·불교·도교라는 동양의 깊은 철학을 소화해냈고, 그 위에 서구의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라는 현대적 가치까지 치열하게 공부하며 학습한 나라입니다. 한마디로 수없이 많은 ʻ정신적 학위’를 취득한 상태죠. 그런데 지금 와서 또다시 누군가의 정답을 복제하거나 이미 실패로 판명된 길을 따라가자는 것은, 학사·석사·박사까지 마친 사람이 다시 초등학교나 중학교로 돌아가겠다고 고집하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우리가 쌓아온 깊은 내공과 독립적인 주체성을 이제는 좀 믿어주면 좋겠습니다. 조금만 더 용기를 내서 ʻ개화’라는 프레임을 졸업하고 진짜 우리만의 길을 당당하게 걸어가고 싶어요. _본문에서
이제 우리는 ʻ개화’라는 외부 문명의 정답을 복제하며 따라잡기에 바빠 초조해하던 시절을 졸업해도 되지 않을까? 저자는 시인 김지하가 지난 2002년 월드컵 당시 붉은악마의 ʻ짝짝짝짝짝’ 박수 응원을 보며 발견한 정박과 엇박의 조화, 즉 태극의 에너지가 이미 ʻ한류’라는 이름으로 세계를 치유하고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한다.
“함석헌의 『뜻으로 본 한국역사』를 이어, 한 세대의 좌표이자 한 시대의 이정표가 될 책”이라고 일독의 소회를 밝힌 이병한 교수의 말처럼, 편을 가르고 남을 탓하고 콤플렉스와 트라우마에 정체된 한국사가 지겹다면, 전범선의 말과 글을 통해 21세기 새롭게 변하고 있는 세계관의 기초를 함께 공부해보면 어떨까? 피식민과 독재, 수많은 이전투구가 가득했던 한국사의 민낯과 함께, 그동안 우리가 잊고 살았던 한국사의 숨겨진 멋과 흥, 그리고 신명을 가감없이 마주해보고 싶은 독자라면, 이 책이 건네는 14번의 ʻ역사 테라피’를 통해 한국인으로서 품고 있던 복잡한 트라우마를 해소하고 ʻ우리가 어쩌다 여기까지 왔는지’, 그리고 ʻ우리는 앞으로 어떤 길을 나아갈 수 있을지’ 가슴 벅찬 상상을 펼칠 수 있을 것이다.
차례
추천의 글
기획자 노트
여는 글 | “역사는 우리의 삶을 치유할 수 있을까?”
테라피 1 개벽
“한국은 정말 ʻ씹선비’의 나라였을까?”
_조선 제일의 사이키델릭 아티스트, 최제우
테라피 2 독립
“그들은 왜 광화문에서 태극기 대신 성조기를 흔들까?”
_조국을 사랑한 검은머리 외국인, 서재필
테라피 3 한글
“외국인의 한국 사랑은 한국인들만의 국뽕일까?”
_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사랑한 미국인, 호머 헐버트
테라피 4 한류
“세계에 한국의 정신을 알린 한국 예술사 최대 아웃풋은 누구일까?”
_한류를 예견한 전자 무당, 백남준
테라피 5 매국
“무엇이 그를 나라를 팔아먹게 만들었을까?”
_조선시대 비운의 베타메일, 이완용
테라피 6 평화
“한국과 일본은 친구가 될 수 있을까?”
_나라를 위해 몸부림친 두 남자, 안중근과 이토 히로부미
테라피 7 민중
“대한민국의 진짜 주인은 누구일까?”
_민중이 꿈꾼 조선의 미래 그리고 동학을 만든 사람들, 최시형·손병희·전봉준
테라피 8 변절
“이 땅에 망국을 막을 천재는 정말 없었을까?”
_저마다의 변절을 택한 조선의 3대 천재, 이광수·최남선·홍명희
테라피 9 좌파
“그들은 정말 공산주의가 승리할 것이라고 믿었을까?”
어쩌면 지금 북한의 지도자가 되었을 사람들, 화요회
테라피 10 우파
“우리가 알던 대한민국 우파의 역사가 보수주의의 전부일까?”
_한국사가 잃어버린 ʻ평화주의’의 계보, 이승훈·류영모·함석헌
테라피 11 북한
“왜 소련은 수많은 지도자 중 김일성을 선택했을까?”
_거짓과 진실, 김일성의 50가지 그림자
테라피 12 남한
“도둑처럼 찾아온 해방, 우리는 어쩌다 여기까지 왔을까?”
_남한 앞에 놓인 세 가지 길, 이승만·김구·여운형 (上)
테라피 13 분단
“우리는 왜 둘로 갈라진 나라에 살고 있을까?”
_남한 앞에 놓인 세 가지 길, 이승만·김구·여운형 (下)
테라피 14 태극
“한국사는 다시 평화롭게 합쳐질 수 있을까?”
_이념 갈등의 해답을 태극에서 찾은 선각자, 시인 김지하
닫는 글 | “저의 글과 노래는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인물 연표
저자 소개


전범선 작가
1991년 강원도 춘천에서 태어나 민족사관고등학교를 졸업했다. 미국 다트머스대학에서 역사를 전공하고 영국 옥스퍼드대학 대학원에서 역사학 석사학위를 받으며 동서양의 사상적 경계를 넘나드는 학문적 토대를 쌓았다. 미군복을 입은 한국군 카투사를 전역한 뒤 현재 사단법인 동물해방물결 이사장을 맡고 있으며, 밴드 ʻ양반들’의 보컬로서 한국 문화의 고유한 유전자를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 중이다. 저서로는 동물권과 생태주의를 다룬 『해방촌의 채식주의자』, 『살고 싶다, 사는 동안 더 행복하길 바라고』, 『기계살림』 등이 있으며, 피터 싱어의 『왜 비건인가?』 등을 번역하며 생명 윤리와 공존의 담론을 국내에 적극적으로 소개해왔다.
📍전범선 작가 인스타그램(@junbumsun)
책 속에서
ʻ내가 태어난 이 나라는 왜 갈라져야만 했을까?’, ʻ왜 나는 철조 망에 갇힌 이 반도에서 태어나 청춘의 시간을 바쳐야 했을까?’, ʻ고라니와 두루미조차 자유롭게 넘나드는 저 선을, 왜 인간인 나만은 넘지 못하는 걸까?’ 제게 이 질문들은 단순한 지적 호기심이 아니었습니다. 정체성의 혼란이라는 감옥에서 벗어나기 위해 반드시 풀어내야만 했던, 가장 개인적이고도 절박한 생존의 암호였습니다. 이 질문들에 천착할수록 주어는 자연스레 ʻ나’에서 ʻ우리’로 확장되었습니다. ʻ우리는 어쩌다 이토록 깊은 트라우마를 유산으로 물려받게 되었을까?’, ʻ우리는 왜 과거의 유령들에게 붙잡혀 오늘을 희생하며 살아야 하는 걸까?’, ʻ한국사는 어째서 평화가 아닌 갈등과 증오의 언어로 기록되어 있을까?’ _9쪽
우리나라 국화인 무궁화의 ʻ무궁(無窮)’은 공간과 시간 등이 무한 하다는 뜻을 품고 있습니다. ʻ다함( 窮)이 없다(無)’는 뜻이죠. 특히 여기서 ʻ궁’이라는 글자가 중요합니다. ʻ궁’은 조선 사이키델릭의 정수를 담은 핵심적인 표현입니다. 흔히 ʻ궁궁’이라 불리는 이 개념은 우리 국기인 태극과 일맥상통하죠. 태극은 음과 양이 하나로 어우 러져 순환하는 원리를 상징합니다. 흑과 백, 남과 여, 해와 달처럼 서로 대립하는 것들이 이분법적으로 나뉘지 않고 결국 하나로 맞물려 돌아가는 것입니다. 끝에 다다르면 다시 시작점으로 돌아오는 영원한 흐름이죠. 무궁이란 결국 끝이 없다는 뜻이며, 이는 곧 우주의 본질이기도 합니다. 동학에서 자주 사용하는 ʻ한울’이라는 표현 역시 ʻ무한한 울타리’로서 끊임없이 확장하는 우주를 의미하죠. 「흥비가」의 “무궁한 이 울 속에 무궁한 내 아닌가”라는 마지막 라인은 결국 우주가 무한하듯이 그 속에 존재하는 나 또한 무한한 존재라는 깨달음을 선포한 것입니다._41쪽
한국에서는 흔히 친미냐 반미냐, 친중이냐 반중이냐로 세계를 나누고, “좌파는 미국을 싫어하고 우파는 미국을 좋아한다”는 식의 이분법적 인식이 강하게 작동합니다만, 미국이라는 나라는 그렇게 단순하게 규정될 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미국의 핵심 정신은 바로 ʻ독립 정신’이라고 생각합니다. 미국은 독립전쟁으로 시작된 나라이며, 미국이라는 나라 자체가 국민이 스스로 주인이 되어 단결하고 나라의 방향을 결정한다는 개념을 역사상 처음으로 분명하게 보여준 사례였죠. ʻ내가 주인이 되어 이 나라의 문제를 결정하겠다’는 선언, ʻ영국의 왕이 아니라 아메리카 식민지의 주민들이 세금을 얼마나 낼지, 어떻게 투표할지를 직접 정하겠다’고 나선 것이 바로 미국의 정신입니다. 그리고 필립 제이슨은 조선에도 바로 이 정신이 필요하다고 보았습니다. 왕이나 소수의 지배자가 아니라, 백성 스스로가 주인이 되어 나라의 운명을 결정해야 한다는 것, 이것이 그가 미국에서 배운 독립 정신이었죠. _63쪽
그는 쫓겨난 뒤에도 펜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앞서 말한 저서 『대한 제국 멸망사』의 서문에서 ʻ이 책을 고종 황제에게 바치며, 조선이 언젠가는 반드시 다시 일어설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한국의 문화가 다시 꽃피울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죠. 헐버트가 이토록 한국의 부활을 믿었던 이유는 단순히 한글이나 「아리랑」이 아름다워서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무엇보다 한국인의 ʻ평화주의’에 주목했습니다. 일본과 다른 여러 나라를 다 다녀봤지만, 침략을 당하면 서도 이렇게까지 순수하게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처음 봤거든요. 조선인들의 비폭력적인 마음가짐이 얼마나 고귀한지 깨달은 그는 제국주의자들의 식민주의보다, 고통 속에서도 평화를 지키려는 조선인들의 마음이 훨씬 더 아름답고 위대하다고 믿었습니다. _79쪽
안중근의 삶 역시 단순히 독립운동가와 친일파의 이분법 으로 평가하기에는 지나치게 복잡한 면모가 있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안중근과 이완용을 각각 선과 악의 전형으로 보기에 이런 주장을 입 밖으로 내기는 쉽지 않지만, 정작 안중근이 일본을 긍정할 때 이완용은 오히려 자신의 안위를 위해 일본을 경계했다는 사실은 역사의 지독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_129쪽
일본과 조선이 숙적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사실 역사를 통틀어 보면 두 나라가 정면으로 충돌한 대규모의 전쟁은 약 400년 전의 임진왜란이 거의 유일합니다. 그 긴 세월 동안 왜구의 노략질 같은 갈등은 있었을지언정, 국가 대 국가로서의 전쟁은 극히 드물었습니다. (...) 안중근과 이토 히로부미 모두 근본적으로는 동양인들이 평화롭고 도덕적인 질서 속에서 살고 있었다고 보았습니다. 일본 사무라이의 무사도와 조선 양반들의 선비 정신이 그 바탕이었으며, 우리 동양의 삶은 적자생존과 무한 경쟁이 지배하는 정글의 법칙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그래서 두 사람에게는 서양인들이 고도의 문명을 이룩하고도 끝없이 전쟁을 일으키며 침략해 오는 것에 대한 근본적인 의구심이 있었습니다. 과거의 평화적 전통을 돌이켜볼 때 오늘날 한국과 일본 사람들 중 서로를 향한 전쟁을 원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저 역시 확신합니다. 정말로요. _155~156쪽
최제우는 자신의 사상을 동학이라고 불렀어요. 동학의 ʻ동(東)’은 동양을 뜻하기도 하지만, 당시 조선을 ʻ아동방(우리 동방)’이라고 불렀던 것처럼 조선과 조선인을 가리키는 가장 고유한 표현을 의미했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점은 동학은 ʻ교(敎) ’가 아닌 ʻ학(學)’이었죠. 즉, 가르침을 주는 종교가 아니라 함께 머리를 맞대고 배우고 공부하는 ʻStudy’였습니다. 최제우의 수제자였던 최시형은 가난한 노동자 출신으로, 이런 배움의 모임에 나왔다가 최제우의 가르침에 감명받아 제자가 되었습니다. 최제우는 비록 몰락한 양반가 출신이었지만 엄연히 양반은 양반이었죠. 계급 서열상 가장 높은 곳에 있었지만 신분 차별을 하지 않았고 만민이 평등하다고 믿었습니다. 왜냐하면 모두가 하늘님을 모시고 있었기 때문이죠. _169~171쪽
이런 생각도 듭니다. 만약 우리에게 ʻ개화를 통해 이런 나라를 만들겠다’는 확고한 비전을 제시한 단 한 명의 리더라도 있었다면, 혹은 명확하게 정립된 이념적 토대가 있었다면 3·1 운동 이후의 분열은 조금 덜했을지도 모른다고요. 물론 당시 일제의 혹독한 탄압이 얼마나 잔인하고 악랄했는지 온전히 가늠하기 어려운 지금의 입장에서야 쉽게 할 수 있는 가정일 뿐입니다. 혼란의 시대에 민족의 나아갈 길을 하나로 묶어줄 강력한 사상적 중심이 부재했다는 사실은 결국 천재들조차 각자의 논리에 갇혀 뿔뿔이 흩어지게 만든 근본적인 원인이 되었습니다. _208쪽
류영모는 여기에서 더 나아가, 실은 ʻ하느님’이라는 호칭이 서양 기독교 수입 이전부터 이미 우리 민족의 영혼 속에 깊이 뿌리박혀 있었다고 주장했습니다. 한번 상상해보자고요. 만약 백인 선교 사들이 오기 전까지 하나님이 이 땅에 부재했다면, 그분은 특정 인종이나 지역만 편애하는 편협한 신이 아닐까요? 하지만 예수의 말씀이 보편적인 진리이듯, 하나님은 기독교라는 이름이 들어오기 전에도 이미 동양과 아시아, 그리고 우리 한국을 굽어살피고 보호해 오셨습니다. 신이라면 마땅히 그래야 하고요. 실제로 ʻ하나님’이라는 말은 한국의 조상들이 오래전부터 써온 고유한 표현으로, 하늘을 뜻하는 ʻ하늘님’이자 만물의 근원적인 일체성을 상징하는 ʻ하나(Oneness)의 님’을 의미하기도 했습니다. 따라서 류영모에게 기독교는 서구 문명만의 전유물이 아니었습니다. _250쪽
이미 남북한에 단독 정부가 따로 들어서며 분단의 비극이 기정 사실로 받아들여지던 1949년 6월 26일, 통일 정부를 열망했던 김구마저 경교장에서 육군 소위 안두희의 총탄에 쓰러지며 해방 공간의 비극은 정점에 달합니다. 안두희 역시 배후 없는 단독 범행이라고 주장했으나, 그 진실은 여전히 미궁 속에 남아 있죠. 1945년 부터 1949년까지 해방 공간에서 벌어진 건국을 향한 물줄기의 결과만 놓고 보면 참 비극적입니다. 어떻게든 하나의 정부를 수립해야 한다고 외쳤던 김구와 여운형은 끝내 꿈을 이루지 못한 채 살해를 당했고, 미국과 소련 등 외세의 도움을 받아서도 단독 정부를 수립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이승만과 김일성은 각각 남북한의 첫 지도자가 되었으니까요. _326쪽
저는 진보도 보수도 아닙니다. 제가 말하는 것은 좌익이나 우익이 아니라 태극입니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문화 현상은 마치 항아리 속에서 된장이 오랫동안 푹 발효되는 과정과 닮아 있습니다. 미국도 넣고, 중국도 넣고, 일본도 넣고, 소련도 넣고, 흑인 음악과 백인 음악도 넣고, 재즈와 클래식과 심지어 일본 엔카까지 몽땅 섞었습니다. 거기에 기본으로 갖고 있던 우리 굿이 만나 푹익었더니 마침내 깊은 맛이 우러나오기 시작한 겁니다. 비빔밥처럼 여러 재료가 뒤섞여 조화롭게 어우러진 맛이죠. 푹 익은 된장이 결국 제맛을 내듯, 한국의 얼도 이제야 비로소 제멋이 나기 시작했습 니다. 그동안은 설익은 맛, 껍데기만 번지르르한 겉멋의 단계였다면, 지금은 설멋이 아니라 제멋이 나는 국면에 들어섰죠. 저는 이 흐름을 ʻ풍류’가 ʻ한류’로 번져가는 시대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_35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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